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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증거에서 행복의 꽃씨로(김미애 변호사, 수영로교회)
 출처 : 여의도 순복음 신문사
조회 : 4,064   작성일 : 2005. 08. 18  

희망의 증거에서 행복의 꽃씨로(김미애 변호사, 수영로교회)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하나님 안에서 다시 찾은 꿈과 인생

청소년들에게 포기없는 삶 가르쳐


“17세 소녀가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 후 그녀에게 남은 것은 빚과 무능한 아버지, 차비도 없고 도시락도 싸갈 수 없는 가난한 환경 뿐이다. 친구가 가장 필요한 시기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친구가 없다” 이 모든 상황은 김미애 변호사가 겪은 시련이다. 이제 그 소녀는 변호사가 되어 꿈 꿀 수 없는 상황에서도 꿈을 이룰 수 있다라고 자신의 삶과 신앙으로 증거하고 있다.

 

사업 실패 후 도망간 아버지를 대신해 해녀였던 어머니는 5남매를 홀로 양육하며 생계를 도맡았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막내둥이 김 변호사는 어머니 곁에서 마냥 행복했다. 그러나 김 변호사가 열두살 때 갑자기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다. 어머니는 자궁암 말기였고 수술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된 상황이었다. 어린 김 변호사는 물 한그릇을 떠놓고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산신령, 용왕에게 빌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교회가서 기도를 해보고 싶다며 교회에 가자고 말씀했다. 김 변호사는 어머니를 부축해, 때로는 리어카에 싣고 교회를 다녔다. “엄마가 고통스러워 잠을 못이루시면 제가 벌떡 일어나서 예배를 드렸어요. 혼자 예배를 드리다보면 어느새 엄마가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셨죠” 몇달 밖에 못사신다던 어머니는 4년을 더 사셨고 이런 체험은 그의 가슴에 박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김 변호사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과 다름 없었다. 명문인 포항여고에 입학했지만 차비가 없어 아침마다 돈을 꾸러 다녀야 했고 도시락도 싸갈 수 없어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사라져야 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잠깐 나가라고 해서 나갔다 왔더니 아이들이 돈을 모아 주었다. 그 소식이 교장 선생님께도 알려졌고 반 아이들의 선행을 조회시간에 칭찬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는 결국 학교를 떠나 부산의 방직공장에 들어가 3교대로 일하며 야간 여상을 다녔다. 일상에 쫓기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어느덧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세상에는 나쁜 친구도 많고 돈을 쉽게 벌게 해준다는 다단계, 유흥업소들의 손짓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서는 ‘나는 저들과 다르다. 저기에는 분명 함정이 있을 것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신앙으로 형성된 인격으로 스스로를 지켰다. 쇼핑센터 점원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사업장도 마련했다. 초밥집을 하던 25세 때는 월 300만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인생의 공허함이 그를 엄습해 왔다. “엄마가 투병하시던 그 시절이 그리웠어요. 최악으로 어려운 순간인데도 그때가 제 인생에 태양이 비치던 날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장사 끝나면 2시간 30분 동안 차를 몰아 고향 교회에 몇번이나 다녀오곤 했어요” 그즈음 하나님은 꿈과 환상으로 그에게 돌아오라는 신호를 보내셨다.

9년 만에 신앙을 회복한 김 변호사는 1년 동안 새벽기도회와 저녁예배에 참석하며 비전을 위해 기도했다. 울부짖으며 ‘제발 저의 길을 보여주세요’라고 간절히 외쳤다. 법조인의 꿈을 얻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단 7개월 동안 수능을 준비해 동아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곳에 눈돌릴 새 없이 공부에 매달렸다. 고시반 입실시험에 합격해 학비면제와 숙식제공, 보조금을 받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6일 동안 공부하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로, 청년부 그룹서기로서 봉사도 열심히 했다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다.“예전에 장사하며 몸을 혹사했던 것 때문에 몸이 아팠죠. 너무 아프면 누워서 하고 그마저도 힘들면 테이프를 들으면서 공부했죠” 꿈이 확실했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그를 막지 못했다. 이렇게 거침없는 그에게도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약점이 있었다. 긴장하면 글을 못쓰는 것. “시험은 많은 내용을 정확하게 써내야 해요. 아는 게 많아도 쓰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유독 시험 칠 때 긴장으로 굳는 자신의 모습에 “나는 왜 이것 밖에 안되지? 예수 믿는 사람이 담대하지 못한거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약점을 지니고 2002년 2차 사법고시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시험지를 배부 받기 전 눈을 감고 시편 23편을 묵상했어요. 하나님이 나를 안아주시는 환상을 보았죠” 차분한 마음하게 시험을 보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잔디밭에 나가 손을 들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사람들이 쳐다보았지만 그들의 시선보다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더 컸다. 김 변호사는 마지막날까지 무사히 시험을 마치고 합격을 거머쥐었다.

 

김미애 변호사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덕분에 사건을 맡을 때도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먼저본다. “저를 찾아오는 분들은 가슴에 한이 많은 사람이 많아요. 남일 같지 않을 때가 있죠” 그 중 17세 소년의 재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돈을 뺏기 위해 지나가던 행인을 찌른 아이는 할머니와 외롭게 살고 있었다. 김 변호사는 1심에서 7년형을 선고 받은 아이를 2심 때 만나 4년으로 감해질수 있도록했다. “재판 중 아이도 할머니도 울고 아이의 처지를 다 아는 나도 눈물이 났어요. 속으로 울음을 삼켰죠. 왜 이 아이가 여기 서있어야 하는지, 왜 아이가 사람을 찔러야 했는지, 결코 사회는 책임이 없을까요?” 김 변호사는 지금도 그를 찾아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준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교회학교 아이들에게도 말한다. "꿈을 가지고 살아라.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외로운 친구는 없는지 살펴보라"고.

김미애 변호사의 홈페이지(http://www.modoo21.co.kr) 첫화면에는 ‘꿈과 희망 또 하나의 세상’에 대한 그의 바람이 담겨있다. 모두 잘사는 미래를 꿈꾸고 기꺼이 자신이 그 시작인 행복의 꽃씨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더 없이 따뜻하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김미애 변호사. 더 큰 사랑을 꿈꾸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순복음 가족신문] 복순희기자 (lamond@fgtv.com)